에스겔은 하나님께 이끌려 골짜기로 갔습니다. 골짜기는 이스라엘의 갈라진 모습을 의미합니다. 그 골짜기에는
오랜 세월 동안 비 바람에 시달려 극심하게 말라 버린 뼈들만 널려 있었습니다.
때문에 이 골짜기는 오직 황량함과, 공포, 그리고 절망만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. 선지자 에스겔의 눈앞에 펼쳐진
골짜기의 모습은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 겪고 있는 절망에 빠진 현실를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. 그 골짜기에 가득한 “마른 뼈”들은 바벨론 땅에서 당하는 포로 생활의 비극과 고통으로 소망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이스라엘 백성들
삶의 현장 그 자체를 나타내고 있었던 것입니다.
바벨론 땅에서 당하는 포로생활은 이민자들의 삶과 많이 흡사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.
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들이 비록 포로생활은 아니다 할지라도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방인으로서
무어라 형용키 어려운 이민자로서의 한계와 절망을 느껴야 될 때가 많습니다.
내 고국보다 더 좋은 선진국에 살면 선진국에서 겪어야만 하는 이민자의 아픔이 한 구석에 늘 존재하고, 고국보다
못한 후진국은 그 나름대로의 고통이 이민자를 압박합니다.
에스겔의 눈 앞에 펼쳐진 마른 뼈 들의 형상이 바로 우리 이민자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.
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생각하면 “마른 뼈처럼 삭막한 이민자의 삶”으로 비젼도 없고 희망도 없는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 모습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
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 이민자를 포함한 수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은 비젼으로 안내 하실 것입니다.
하나님과 에스겔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됩니다.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골짜기에 쌓여있는 수 많은 마른 뼈를 보여 주시면서 “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?”고 질문하십니다.
여기에서 “살겠느냐”의 말은 히브리어로「하야」인데 “재생시키다, 회복시키다”라는 뜻입니다. 에스겔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질문은 ‘이 골짜기의 뼈들이 다시 살아나겠느냐? 이 뼈들과 같이 소망이 사라져 버린 이스라엘이 회복되겠느냐?’고 물으신 것입니다.
이런 하나님의 질문에 대하여 에스겔은 간단하지만 확실하게 “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.”(겔 37:2)라고
대답합니다. 즉 말하자면 “주 여호와만이 이스라엘을 다시 살리시며, 오직 주님만이 회복시키실 수 있습니다.”
라는 고백입니다.
에스겔의 고백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모든 말라 버린 뼈에게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것을
명령하십니다.
그래서 에스겔은 “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/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/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
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.”(겔 37:4~6)고 선포하였습니다.
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그 순간, 뼈들 가운데서 소리가 났습니다. 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.
뼈끼리 들어맞아 서로 연결되었습니다(겔 37:7~8).
3편 계속 됩니다.
자료 / 김충의 목사 설교 중에서
'에스겔 (본문 및 요약 포인트)' 카테고리의 다른 글
【 빵의 식탁 그리고 말씀의 식탁 2 】 (0) | 2017.10.11 |
---|---|
빵의 식탁과 말씀의 식탁 (0) | 2017.10.11 |
【보이지 않는 하나님 / 살아 계신 하나님】 (0) | 2017.09.10 |
▶ 마른 뼈를 살리신 하나님의 역사 3편 (에스겔 37:1~10)◀ (0) | 2017.08.27 |
▶ 마른 뼈를 살리신 여호와의 생기 1편 (에스겔 37:1~10) (0) | 2017.08.20 |